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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내가 이 땅에 온 이유' 새터민을 위한 대안학교 졸업, 강용수(기계자동차10)

강용수(기계자동차10). 그는 2003년, 탈북하여 한국에 자리하게 된 새터민(2005년부터 사용하게 된 한국거주 탈북자를 일컫는 용어)이다. 8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사람들의 새터민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어울림에 대한 어려움을 겪기도, 사회·문화적으로 적응하는데 어려움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들을 그는 오히려 경험으로 삼아, 숨지않고 되려 더욱 씩씩하게만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심도 가지게 되었고, 부지런히 꿈을 꾸고 노력했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 마침내, 이제는 그의 나라가 된 한국에서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에 입학하겠다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가 이 땅에 온 이유가 된, 8년 간 한국에서의 삶과 국민대에서의 생활을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 직접 들어보자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 10학번 신입생으로서의 생활
아직 신입생이라 학교생활을 한지 한 달도 채 안됐기 때문에 아직은 국민대와 기계자동차학과에 대해 '어떻다' 하고 말할 순 없지만 천천히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동기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제가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아예 확 많이 나다 보니, 오히려 더 편하게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벌써 학과 소모임에도 들었어요. 사회·과학·문화에 관해 이슈화되는 주제를 토론하는 '청맥'이라는 곳인데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조금 어려운 게 있다면, 공부예요. 사실 그저 '차'가 좋고 '차'에 관심이 많아서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로 왔고, 오로지 자동차에 대해서만 배울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실제는 기본적으로 '미적분' 등 수학을 공부해야해요. 이전에 공부해 본적 없는 과목이라, 이 부분에선 정신이 없고 괜히 마음이 바쁘네요.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에 지원하게 된 계기와 합격소감
대안학교에서 공부하던 때, 같은 학교에 친한 형이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에 탈북자로서 최초로 입학하게 되었어요. 그 형과 가까이 지내던 저는 자연스럽게 형과 함께 자동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에까지 욕심이 생기게 되었어요. 심지어 '국민대 기계자동차학과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욕심은 커졌고, 합격을 위해서 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누구보다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국민대에 오게 된 것에 대해서는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도, 제가 꿈꾸던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단 사실도, 그 자체만으로 너무 기분 좋아요. 덧붙여, 대부분의 새터민들은 보통 문과대에 지원하거나, 한국오기 전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얻게 된 언어능력들로 어학을 공부할 수 있는 외대에 지원하는데, 저는 그들과 다르게, 공대로 오게 되어서 기계자동차학과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탈북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
경제적인 이유로 어머니, 누나와 함께 탈북을 결정하고 탈북 한 이후 오랜 시간동안 중국, 라오스, 태국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UN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 벌써 8년 전의 일이예요. 가장 먼저 국정원에서 한 달여 동안을 신원조사절차를 밟아야했어요. 그런 다음 사회적응교육과 체험을 위한 기관인 '하나원'에 두 달 정도를 머물렀어요. '하나원' 내에 있는 '하나둘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에 오기 전 졸업했던 '셋넷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죠.

국민대를 오기 전 새터민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의 생활
'셋넷학교'는 일반 고등학교들과는 다른 교육과정을 시행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테스트를 통해 반을 나누고 학습하게 하는 눈높이교육이나 학생들의 사회적응을 위한 많은 체험학습 등이 있죠. 학생들 간의 관계나 선생님과 학생들과의 관계도 여타의 학교에서보다 훨씬 가깝고 친밀해요. 학교에서 생활할 때 학생들은 자유롭다고 느낄 거예요. 저 같은 경우 '셋넷학교'에서의 목적은 검정고시 합격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과 선생님은 제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커다란 도움이 되어 주셨어요. 북한의 학교와 비교해서도 저에게 '셋넷학교'에서의 생활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어요.
북한에서의 학교생활을 할 때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나 대학에 대한 욕심이 없었어요. 다들 경제적인 면에 초점을 두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욕심을 가질 수 없었죠. 하지만 '셋넷학교'에선 제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할 수 있었죠. 그런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어요. 

한국에 살게 된 이후, 문화충격의 경험이나 후회한 적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인 차이는 엄청납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의 충격은 오히려 없었어요.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잠시 머물면서 이미 겪었던 것이었죠. 하지만 언어의 문제가 컸던 것 같아요. 지방사투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북한의 억양 때문에 활발한 성격이었던 제가 말이 없어지면서 소심해지기까지 했었어요. 북한의 말에는 일본어나 중국어가 많이 섞여있기 때문에 제가 말을 할 때마다 이 곳 사람들은 '나이가 아주 많이 드신 어르신들 말투 같다'고 했죠. 반면 남한의 말에는 외래어가 많이 섞여 있어요. 처음엔, 외래어가 생소하기만 한 저에게 심지어 '치킨', '피자'조차도 이해 못할 단어들이었어요.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언어도 문화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후회한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어요. 북한에서 살아갈 때에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는데, 이곳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욕심을 낼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인 취미나 특기, 관심사
특기라 할 만큼 잘 하는 것은 없지만, 모든 운동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스노우보드에 애정이 많고, 축구와 같은 구기 종목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학교에 다니다 보니 교내 동아리에도 꽤나 관심이 가요. 밴드동아리, 글 창작 동아리,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동아리 등 너무 많은 분야에 모두 욕심이 나요. 학과생활이 바빠서 동아리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고 싶은 욕심이 멈추질 않네요.

사람들의 새터민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아마 이번 새터민은 37기가 될 거예요. 10기 때 부터 하나원이 생겼고 한국 각계에서 지원도 늘어났죠. 이렇게 새터민들의 수도, 한국 내에 차지하는 위치도 점점 커져만 가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인식은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 새터민이 사회에 엇나가는 일을 저질렀다면 그 사람만 보고 '모든 새터민은 이렇다'하고 판단하며 일반화 시켜 버리죠. 이런 인식들이 확대 될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나빠지기만 해서 '새터민'이라는 이름이 아무 죄가 될 것이 없는데도 부끄러워져 사실을 숨기려고 하게 되요.
개인적인 경우를 예로 들자면, '새터민'이라는 것을 말하기 전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내던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적대적이어 진다거나 혹은 저를 동정하기도 해요. 이럴 때 저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죠.
또, 새터민에 대한 사회적인 제약도 여전히 있어요.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다를 거라는 생각을 버려주시고 오직 실력으로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새터민은 한국의 일부로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사회적 제약과 편견이 하루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국민대에 대한 소속감
한국에 이제 꽤나 오래 살아서 그런지,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항상 한국을 응원하게 되었어요. 특히 스포츠, 축구경기를 볼 때 제 자신이 한국인이구나 하고 느껴요.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고 있거든요. 북한과 남한이 축구를 할 때는 어느 쪽이 이겨도 상관없어요. (웃음) 이제 정말 한국인으로써 저조차도 어색함이 없어요. 오히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당연하게만 느껴집니다.
국민대에 대해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오랫동안 원하던 학교였기 때문에 합격하게 되어 너무 기뻤고 지금의 소속감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국민대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뿌듯하고 이런 삶에 감사합니다.   

 

그가 살아온 삶과, 살고있는 삶, 그리고 앞으로의 삶은 모두 '그가 이 땅에 오게 된 이유'가 된다. 그와 함께하는 '우리'가, 그와 마주한 '내'가, 곧 그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미 대한민국 사람이 되어버린 그의 앞에서 편견은 버리고 다르지 않은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와서 그가 가진 가장 커다란, 그리고 최초의 꿈이었던 국민대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여태껏 그래 왔던 것 처럼 앞으로 그는 국민대 속에서, 그의 나라 한국에서 더 노력하며 더 큰 꿈을 꿀 것이다. 그와 함께 노력하고 꿈꾸는 국민인,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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