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1시, 예술관
[ 환한놈 - 야작 ]
국민대학교는 낮에는 햇빛에, 밤에는 조명에 신경을 많이 쓴 학교라서 한밤중에도 화려한 야경을 자랑한다. 그래도 여전히 깜깜한 밤에 환하게 불을 밝힌 곳이 있었다. 예술대 지하에 있는 입체미술학과의 실기실이다. 예술대와 조형대에서 야작이라는 말은 흔한 말이다. 야작이란, 야간작업의 줄임말로 집에 가지 않고 새벽이나 아침까지 작업 하는 것을 말한다.
밤 11시인데도 환하게 켜진 불만 보고 무작정 들어가 본 입체미술 4학년 실기실에서 입체미술학과 4학년(03학번) 최 황씨를 만났다. 졸업 작품 준비 때문에 야작을 한다는 최 황씨는 집이 잠실이어서 왔다갔다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작을 한다고 한다. 까만 밤을 환히 지새는 그에게서 입체미술과 야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회화과와 입체미술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원래 다른 학교의 명칭은 조소과에요. 조소과라 함은 원래 흙을 주재료로 하는 건데 거기서 돌도 깎고 나무도 깎고 용접도하고 그러죠. 근데 그보다도 더 포괄적인 작업을 명칭하는게 입체미술이에요. 입체와 회화 평면으로 나누거든요? 평면은 그림을 그려서 벽에다 거는 거고 입체미술은 저런식으로 조각품 같은걸 만들죠. 저기는 석조장이에요. 저 소리도 지금 돌 깎는 소리구요.
- 졸업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남들한텐 없고 나한테만 있는 게 뭘까 라고 했을 때 저희 집에 총알 재질이랑 똑같이 만든 악세사리 총알이 하나가 있었어요. 영화 소품에 쓰이는 거요. "그래, 이런 거 그걸로 한번 얘기를 해보자!" 그래서 총알하면은 자연스럽게 전쟁이 나오고 또 우리나라가 되게 재밌잖아요, 전쟁에 많이 얽혀있고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요. 근데 사람들은, 저희는 지금 대학교 잘 다니면서 되게 행복한척 세상모르고 아이러니하게 살고 있죠. 같은 시기에 같은 전쟁을 한 상대편 북한은 저희가 듣고 보는 것과 같이 힘들게 살고 있는데.. 사실 여기에 대해서 무관심 하다는 건 되게 어떻게 보면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종전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만 자연스러운 바보짓거리 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이러한 현실을 잊어 가는 거, 잊혀져 가는 거, 거기에 대해서 한번 다시 상기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그래서 전쟁이라는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꺼낸 거구요, 아직 작품이 이제 막 제작에 들어가서 청계천에서 굴러다니는 총알들을 수집해서 수만 개가 모아놓으면 그걸 다다닥 붙여놓고 그림을 그리는 거에요. 지금은 총알을 모으고 있죠.
- 작품 구상은 언제 하시나요?
주로 밤에 하죠. 밤에 학교가 되게 조용하잖아요, 사람도 없고.
예술관이 사실 진짜 마음에 드는 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제 아침에 수업이 시작하잖아요. 그러면 어여쁜 무용과 학생들이 막 돌아다니고, 그리고 여기구조가 복잡한데 막 위까지 공간이 뚤려 있어요. 그래서 소리가 되게 잘 들리거든요? 아침에 저쪽 음대 오케스트라 연주가 들려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로비로 나오면 여기 천장이 유린데, 날씨가 맑은 날 햇빛이 쫙 비치면, 그럴 때 천장에서 오케스트라 소리가 쫙 울려 퍼지고, 앞에는 어여쁜 무용과 학생들이 돌아다니시고. 좋죠, 지상낙원이요, 예술관 정말 좋아요.
- 야작하면서 정들어서 CC해본 적 있으세요?
아니요. 저는 없어요. 주위에 있죠. 야작하다가 CC되고 막 그러죠.
보통 여자 같은 경우에는 돌 깎을 때, 돌 옮기고 이럴 때 절대적으로 남자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저희 과 같은 경우에는 남자가 적은데 솔직히 남자가 없으면 돌아가지가 않아요. 여자들이 저런 철 덩어리 같은 거 만들 수 있거든요? 근데 저걸 어떻게 옮길거에요, 여자들이... 남자들이 도와줘야죠.
그러면서 서로 도와주면서 CC되는 경우가 많죠~
뭐 예를 들어 사진 암실 같은데 있잖아요. 저희도 사진수업 있으니까, 사진암실에서 둘이 작업하다가 이제 다음날 둘이 CC되서 나오고, 그런 경우가 있죠.
저희 1,2학년 때는 암실 안에 있는 붉은색 형광등이 사랑의 오로라라는 설이 있었어요. 그 빛을 같이보면 CC가 된다더라 뭐 이런거요.
- 야작하다 에피소드? ①
저 군대 가기 전에는 편의점이 없었어요, 그래서 담배가 없거나 배가 고프면 북악 터널을 넘어가서 편의점에 갔었어요. 왔다 갔다 하는데 40분이죠. 하하
또 예술대 정문에 카드 찍는 것도 없어서 창문을 통해서 넘어 다녔어요, 다들 자기만의 방법들이 있었죠.
- 야작하다 에피소드? ②
방학 때 야작하다가 도둑 잡은 적이 있어요. 이번 여름 방학 때요.
얼마 전에 지난학기 말쯤에 건물마다 붙은 게 있었어요. 노트북 사진 붙어있는 전단지요.
CCTV 찍힌 거. 그 사람이었거든요? 그 사람을 저희가 잡았어요. 외부인이고, 나이도 꽤 있었는데 서른 몇 살인가 그랬어요.
입체미술 4학년 실기실 창문을 넘어서 들어와서 두리번 두리번 뒤지고 있었는데, 저희 중에 한명이 밖에 나갔다가 잠깐 뭐가지러 들어갔는데 그 사람이 걸린 거죠, 그래서 경찰에 넘긴 적이 있어요. 없어지거나 그런 건 없었구요. 그 사람 가방에서 지갑 두개랑 시계 세 개 나왔어요.
- 야작할 때 술은 많이 먹나요?
보통 저학년 땐 그래요. 그랬어요. 지금 1,2학년 후배들은 되게 대단한 게 그런 애들을 한명도 못 봤거든요? 저희 때는 그게 되게 일반적인 일이었어요. 선배들 도와주다가 선배들 술 마시면 같이 술 따라 마시고...그냥 그렇게 줏대 없이 사는 거죠. 그러다 이제 학고도 맞아보고...
- 야작하는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예를 들어, 술 먹지 말아라 라던가...
야작하는 사람들한테...술 먹지 말라 구요?? 하하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야작과 술은. 학교에서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해 줘야지 그게 낭만이죠. 작업하다가 목마르면 맥주 한 캔 씩 사와서 돌려서 예술에 대해서 논하고.이게 대학 아니겠습니까? 라고 딱 저는 얘기하고 싶습니다. 예술을 논한다고 해서 대단한 그런 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얘기들 하는 거죠. 잡다한 얘기들도 하구요.
-최 황씨에게 야작이란?
저에게 야작이란 삶이다! 학교가 집이니까요. 월요일에 와서 금요일에 가는걸요. 하하. 오늘도 마찬가지이구요. 학교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참 물고기도 키워요.
피라니아라고 물고기요. 그냥 심심해서요.
야작하면 그게 곧 친구들과 동거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매일매일 재밌고 힘들어요.
[기획특집 국민대 놈!놈!놈!]
- 국민대학교의 저녁은 푸르고, 밤은 환했으며, 아침은 눈부셨다.
1. 야심찬 놈들이 몰려온다! - <푸른놈>
2. 야심찬 놈들이 몰려온다! - <환한놈>
3. 야심찬 놈들이 몰려온다! - <눈부신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