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인본주의를 담은 공간, 김수근의 건축세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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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인간에게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이다. 모든 공간에는 삶의 추억과 향수로부터 오는 다채로운 감성이 서린다. 그 공간에서의 추억이 공간의 의미를 만들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행복하게 뛰놀았던 놀이터가 그리운 것이 그렇고, 이별 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공간들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사실이 그렇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의 마음이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한 건축가는 자신이 만드는 공간에 인본주의 정신과 문화예술을 담는다. 바로 한국의 천재 건축가라 불리는 김수근이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학부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건축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면서도 사회적 가치와 균형을 이루도록 건축을 설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건축들을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감성과 사회적 가치를 직접 경험해보자.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정신은 한국 근대 역사적 배경과 맞물린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건축계는 전통을 계승할 민족 건축을 실현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았다. 이후 한국 전쟁과 군사정변으로 혼란이 지속됐고 한국의 건축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 건축 양식이 무분별하게 도입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수근은 우리 건축의 전통적 형식 보다는 그 공간에 담긴 정신에 주목했다. 인본주의를 바탕에 둔 공간 정신의 계승은 한국 현대 건축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건축계의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열었다.
김수근 건축가의 대표작은 ‘공간 사옥’이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공간 사옥’은 1997년에 지어진 것으로 한국 현대 건축의 대표로 손꼽힌다. 문화재로 등록된 이 건물의 내부는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높낮이를 가진 여러개의 바닥층이 방을 형성하고, 복잡한 계단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막힘없이 연결된 한옥의 구조를 현대 건축에 적용시킨 것이다. 곳곳에 위치한 여러 방은 너무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크기로 이루어져있다.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친밀감을 얻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적 규모로 이루어진 우리 전통 건축의 지혜를 살린 것이다.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경동 교회는 건축가 김수근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경동교회는 도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종교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경동교회 건물 전체는 기도하는 손을 연상케한다. 건물 외벽에는 쪼개진 벽돌이 붙여져 있어서 표면이 고르지 않고 높낮이도 각기 달라 햇빛이 비추면 그림자의 형상이 인상적이다. 내부로 들어가는 약 3m의 길은 미로같은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좁은 공간은 종교적 고행을 의미하기도 하고 골고다 언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시에 한국의 골목길에서 정을 찾던 김수근의 건축관도 드러난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인본주의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국 대표 건축가 김수근! 그의 열정적인 삶은 단순 건축가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과 사회를 연결시키며 척박했던 우리 문화를 변화시켰다. 그가 창조한 공간에는 어떤 신념과 추억들이 서려있을까. 새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공간을 찾아 자신의 분야에서 나만의 철학을 가진 또 다른 김수근이 되리라는 원대한 꿈을 꿔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출처: 김수근 문화재단, 국민대 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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