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젊은 작가 기획 공모전
김도명 <초록 이야기>
‘초록’이란 말을 들으면 어릴 적 언젠가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지금보다 키가 작아서 땅위의 초록이 더 잘 보였던 그 때가 연상되는 걸까 아니면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새싹이 그리워서 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록’의 싱그러움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계속 나를 그 속으로 데려간다. 빨려 들어간 초록은 넓고 깊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도명의 작품이 있다.
작가는 무한한 어떤 공간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꺼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항아리가 갓 태어난 빈 자리는 마치 모태의 형상인 듯 둥글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 관객에게 스스로 아기가 되어 들어가고 싶은 포근함을 건낸다. 그 공간은 비어있지만 아무도 비어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다시 커다란 항아리는 자신 안에서 두 번째 항아리를 뱉어낸다. 자신의 껍질만을 남긴 채로 항아리는 태어난다. 재빨리 세 번째 항아리를 꺼낸다. 네 번째 항아리를 꺼낸다. 알 껍질 같은 커다란 공간에서 태어난 항아리들은 빨리 햇빛을 보고 싶은 양, 툭툭 세상으로 뛰어나오고 다시 자신의 안에서 새로운 항아리를 만들어 세상에 던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과정 속에서 커다란 항아리는 결국 점이 되어 흙으로 사라지게 될 테지만, 흙으로 돌아간 항아리가 다시 양분이 되어 새로운 항아리를 자라게 할 원동력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가 던져놓은 미지의 공간은 구체적인 사물들로 변하여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변한다. 양각과 음각으로 인식된 공간은 마치 끊임없이 뱉어내고 삼키는 행위를 반복하는 듯, 혹은 태초에 하나였던 자신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듯 조용했던 공간을 탄생과 성장의 기쁨이 넘치는 곳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현실 속의 항아리는 고정된 것이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이 세계의 항아리는 성장하고 숨을 쉰다. 마치 자연이 그러하듯이.
눈과 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풀벌레에게 자신의 일부를 넘겨가며 시간을 보낸 항아리들은 스스로를 자연에 그대로 융화시켜 싹을 틔운다. 처음 언젠가는 식물을 담는 그릇이었을 그 항아리들은 이제 그 자체가 식물에 동화되어 함께 자라고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흙 위에서 따뜻함을 양껏 누리다가 전시장의 딱딱한 바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그 모습에 행여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어, 억지로 데려온 것 같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자연의 이야기는 이렇게 작가의 손에서 항아리를 타고 새싹으로 분해 다시 생명이 된다. 그들은 한 공간에서 태어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다시 생명을 탄생시키고 함께 공간을 만들며 살아간다. 서로 맞춰지고 나란히 서고 하나가 되었다가 여럿으로 나뉘며 존재한다. 이처럼 무한한 공간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고리 속에서 반복되고 변화하면서 고정되지 않은 채 현재를 살아간다. 이 속에서 김도명 작가의 ‘초록’은 온화하고 포근하다.
그래서 그 세계를 만지고 싶다. 그 따뜻함을 내 손에 담고 싶다.
미술이론 김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