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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낸, 그래서 풍성해지는 공간 /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담담원'

실외와 실내건축 넘나드는 김개천의 마법

강의실로 들어선 학생들은 방석을 하나씩 꺼낸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올라 방석을 깔고 앉는다. 한 사람씩 앉던 대학 강의실 의자는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탁자가 책상이다. 교수도 함께 바닥에 앉아 강의를 한다. 조별 토론을 할 때는 하얀 플라스틱 미닫이문으로 공간을 나누고, 다 같이 수업을 할 때는 문을 밀어 공간을 하나로 튼다. 마치 서원이나 향교 앞 누각 같은 강의실, 그러나 실내에 있는 강의실, 국내 최초의 전통 좌식 온돌 강의실의 모습이다.

놀라움 자아낸 좌식 강의실 ‘담담원’

‘전통의 철학’과 ‘감각적 현대’ 조화

국민대에 새 명물이 생겼다.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2층에 새로 들어선 강의실 ‘담담원’이다. 지난달 말 완공된 이 강의실은 유례가 없는 좌식 강의실을 시도한 파격적인 사례답게 이름도 따로 붙었다. 교수들은 “편안히 모여 앉아 수업을 하면서 수업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 놀라운 변화는 국민대 교수들의 합작품이다. 대학원 2층 강의실을 새로 꾸밀 일이 생기자 전승규 대학원장이 “아주 새로운 강의실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김인철 교수가 “우리 전통식 강의실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가구 디자이너로 유명한 최경란 교수가 좌식 강의실에 맞게 하이그로시 탁자를 디자인했고, 변추석 교수가 강의실 이름 글꼴을 만들었다. 전체 디자인은 국내 대표적인 실내건축가 김개천(50) 교수가 맡았다.

전통을 수용하되 디자인까지 전통 한옥식으로 갔다면 이 강의실은 오히려 다른 곳에도 있는 모습과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전통 좌식 공간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갔다. 김개천 교수의 최신 작품이 화려한 식당 인테리어도, 대형 빌딩의 로비 인테리어도 아닌 강의실이라는 점이 놀랍다. 강의실이 건축가의 작품 반열에 오른 것도 담담원이 세운 또다른 기록일 듯하다.

김 교수는 실외와 실내건축 양쪽을 넘나들며 두 분야에서 모두 1급으로 평가받는 드문 건축가다. 직선을 강조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절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린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설악산의 만해마을, 동국사 대각전 법당 등 그의 작품들은 실내와 실외를 막론하고 절제된 듯하면서도 느낌이 풍부한 독특한 건축세계를 보여줬다.

최근 들어 그의 실내 디자인은 선(禪)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유리와 철 등 그가 그동안 꺼렸던 재료들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빛의 처리와 단순미의 추구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실내건축의 공간도 담담원처럼 ‘인테리어’란 낱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생활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평범했던 기업체 직원식당·휴게실

화사하고 격조있는 ‘나무공간’으로

그의 다른 최신작인 목재·건축재료 제조업체 동화홀딩스의 직원 식당 ‘해피 라운지’와 그 전작인 이 회사의 자회사 대성목재 인천 공장의 직원 휴게실 ‘나무공간’은 최근 김 교수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극도로 절제됐던 이전 작품들보다는 색채와 조형성이 풍성하고 화사해졌다. 그러면서도 표현은 최대한 덜어낸 느낌이다.

김 교수가 만든 동화홀딩스와 대성목재의 두 공간은 모두 이 회사 제품으로 만들었다. 직원들은 쉼터가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공간을 아름답게 꾸민 재료들이 바로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란 점에서 자부심을 얻었다. 기업과 디자이너의 동반자 관계 면에서도 모범사례다.

김 교수는 “강의실과 식당, 휴게실처럼 다들 똑같이 생긴 공간을 바꿔 삶을 유쾌하고 격조 높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테리어란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공간 만들기가 최고라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닌가요?” 그는 반문했다.

드러나지 않지만 드러나는 것, 그게 김 교수가 꿈꾸는 건축이다. “제 의도조차 없는 것을 원해요. 그런 것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또 아름다운 형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술자리에서 자기 주장만 강하게 하는 사람, 편안하지 않잖아요? 조용히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선물을 주는 사람이 매력적이죠. 디자인도 그런 거예요.”

 

선(禪) 철학적 조형형식을 갖고 있지 않은 형식

김개천의 건축 키워드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 건축의 거장 미스 판 데어 로에의 말은 이성적이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러나 표현을 최대한 덜어낸 모더니즘 건축은 지나치게 차갑고 비인간적이란 반감도 샀다. 로버트 벤투리는 장식과 상징을 되살리는 건축을 주장하며 “단순한 것은 지루하다”(Less is bore)고 맞받아쳤다. 요즘 스타 건축가 렘 콜하스는 아예 “많을수록 좋다”(More is more)고 말한다. 단순함과 풍부함, 덜어내기와 더하기 사이에서 현대 건축가들은 고민하고 있다.

김개천 교수는 본질적으로 철학적이기 마련인 건축가들 중에서도 특히 철학적인 건축가로 꼽힌다. 동국대에서 선(禪)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독특한 이력을 지녔고, 불교 사찰과 기독교 교회를 넘나들며 철학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축물을 선보여 왔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건축론은 “단순한, 그렇지만 풍부한” 건축이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우리 전통건축을 들여다보면서 현대건축가로 도출해낸 지향점이다. 김 교수는 우리 전통건축의 가장 높은 경지는 정립적인 형식을 넘는 초정립의 건축이며, 이를 “스스로의 형식을 갖고 있지 않은 형식”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이 초정립이란 형식은 “적어서 풍부한” 것이 아니라 “적은, 그러나 동시에 풍부한” 것이자 “풍부한 순간에 그러나 적어지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삶을 담는 편안한 터전인 동시에 무한을 바라보는 예술적 공간이 되는 건축, 많은 것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무한하게 느낄 수 있는 건축을 그는 추구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6-12 19:36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1954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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