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동문CEO토크

동문 CEO - (주)동아오츠카 민장성 대표를 만나다 / 물리교육학과 86학번

얼마 전 창립 37주년을 맞이한 동아오츠카는 포카리스웨트, 데미소다, 오란씨, 블랙빈테라피 등 다양한 음료를 생산하며 한국 식·음료업계에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간판 브랜드인 포카리스웨트는 ‘내 몸에 가까운 물’이라는 광고 카피가 큰 히트를 치며 지금까지도 현대인들의 수분섭취를 돕는 건강음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오츠카가 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인 음료시장의 강자로 떠오르던 1992년은 민장성 사장이 동아제약에 입사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해 그가 동아오츠카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1992년 입사 후 그는 동아제약 의약실 팀장, 비서실장, 동아에스티 대구지점 지점장 등을 거치며 24년 간 크고 작은 성과를 이어왔다. 국민대학교 물리교육학과 동문이자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그가 기억하고 있는 젊은 시절의 노력과 한 기업에 평생을 몸 담으며 깨달은 삶의 지혜에 대해 들어보았다.


평범함 속에서 큰 비범함

동아제약 영업부서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신입사원은 회사와 함께 성장했고, 오늘날 계열사인 동아오츠카의 사장이 됐다. 그간 그가 몸담았던 제약업계에서는 크고 작은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 중 가장 큰 사건은 2000년 의약분업이다. 박카스와 같은 약국판매약 강자였던 동아제약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됐다. 동아제약은 의약분업이라는 위기를 그간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던 전문의약부문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민장성 사장을 비롯한 당시 임직원들은 회사를 전문의약품 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의약업계 강자로서 동아제약의 위상은 유지될 수 있었다. 이렇듯 제약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동아오츠카의 사장으로 발령이 난 것은 그 스스로도 의외였다고 한다.


지난 3월 2일 창립기념식에서 민장성 사장은 기본, 소통, 책임을 강조했다.


Q 동아오츠카로 사명을 바꾼 1992년, 그 해 입사한 신입사원이 세월이 흘러 사장으로서 부임했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듯한데요.

처음 사장 발령이 났을 때는 저도 어리둥절했죠. 제약업계에 너무 익숙해진 터라 처음에는 마치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더군요(웃음). 그러면서 동아오츠카가 경쟁하고 있는 식·음료업계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결, 기억하시죠? 첨단 산업에 이어 인공지능까지 등장하는 미래에 식·음료업계의 비전은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중화학 중심의 고도성장을 이뤄왔죠. 하지만 지금은 저성장과 기술혁명이 맞물려있는 시기예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지만, 성장률은 낮고 불확실성은 커졌죠. 여러 가지 변수가 많겠지만 그럼에도 전 물과 관련된 사업만은 지속발전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어요.

Q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요. 그 바탕이 된 청년기는 어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집은 아주 평범한 가정이었어요. 사교육은 생각도 못한 중·고교시절을 보냈죠. 가정 형편도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법으로 과외가 금지됐던 시절이기도 했고요(웃음). 그저 학교와 독서실을 다니는 것이 공부의 전부일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고, 학업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죠. 하지만 되돌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교육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걸 사회인이 되고 나서 깨달았죠. 아버님은 굉장히 열심히 사신 분이었고, 정직하려 노력하신 분이셨어요. 저 역시도 아버님을 본받아 공정하려 노력했고 객관성이 결여되지 않은 판단을 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는 국민대학교 물리교육학과에 입학할 당시까지도 특별한 꿈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웃는다. 다만 그가 남달랐던 것은 거창한 꿈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점이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까지 그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다. 불가능한 꿈을 꾸기보다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Q 성공의 비결에 대해 묻는 질문도 많이 받아보셨을 것 같습니다.

후배들 중에서 ‘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어오는 친구들이 있긴 해요(웃음). 그러면 저는 사장이 되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하죠. 사실 제가 그랬거든요.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사장을 꿈꾼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 전 그럴 바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계획하고 노력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Q 최근 학교를 방문하신 적은 있으신지요? 옛 추억이 떠오르는 공간은 없으신지 궁금하네요.

지난 3월에 한번 간 적이 있어요. 옛 사범대 자연관하고 공학관은 그대로 더군요. 나머지는 새로 생긴 건물이 많아서 예전과는 꽤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공학관 앞에서 족구를 하던 게 생각나네요. 그때 사범대 족구가 꽤 강했거든요. 저도 나름 족구는 한 실력 했죠(웃음). 족구 한 게임을 하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뒷포’라고 불렀던 후문의 포장마차에 가서 홍합탕에 술 한 잔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웃음이 나요.
 

Q 그 시절, 사장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대학시절에는 그저 노는 걸 참 좋아했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웠어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시기에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인간관계라는 말이죠. 그 시절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내가 남에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인간관계는 한계가 있다는 거였어요. 일종의 계산된 인간관계인 거죠.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객관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처신하려 노력하고 사람을 대한다면, 최소한 부도덕하거나 사심이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런 소신은 변함이 없죠.


그의 대학시절은 군 생활을 계기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입대 전 대학시절이 인간관계를 배우고, 성인으로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시기라면, 제대 후 대학시절은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는 그 시기에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Q 대학 시절, 미래를 결정 지은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순간을 꼽을 수 있을까요?

군 입대가 변화의 계기가 됐죠. 전방에서 복무를 했는데, 한 밤중에 경계근무를 서다 보면 보이는 것은 밤하늘의 별빛이고 생각나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었어요. 다행히 복학 후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죠(웃음). 그때부터 현실적인 판단 하에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지만, 저는 일본문화 특유의 독특한 다양성에 끌렸어요.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이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어요. 당시 함께 공부한 친구는 지금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죠. 그 때를 생각하면 지도교수님이셨던 김철성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제 계획을 들어주셨고, 많이 이해해 주셨거든요. 교수님의 배려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죠(웃음).


24년의 성과와 깨달음

동아제약 영업부 신입사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털어 놓는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오기’도 발동했다. “영업은 정답이 없다, 다만 해법을 쫓을 뿐”, 그가 제약 영업을 하며 깨달은 진리(?) 이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성과를 내기까지 무수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두 밝힐 수는 없다. 개중에는 대외비가 포함돼 있는, 영업 노하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신입 시절 충격적인 사건으로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꼽았다. 중요한 계약 서류를 깜박하고 회사에 놓고 간 덕분에 그는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죽을 위기를 넘긴 사람은 뭔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며 아찔함을 느낀 그는 이후 무엇을 이뤄냈을까?


Q 이제까지 해 오신 일 중 가장 큰 성과라고 꼽을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2000년 의약 분업이 도입된 이후 제약사의 미래가치는 전문의약품의 매출에 따라 좌우됐어요. 동아제약 역시 마찬가지였죠. 저는 1995년 무렵 영업직을 떠나 마케터로서 동아제약이 개발한 신약 1호인 스티렌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 했어요. 위염치료제인 스티렌은 국산 신약으로 가장 성공한 케이스가 됐죠. 제가 후임에게 넘겨줄 때 연간 매출액이 600억원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1,000억원에 육박할 정도의 성과를 올렸거든요. 거대 외국계 제약사들이 매출 상위를 독식할 때 매출 3위까지 올라간 제품은 스티렌이 유일했어요. 당시 국내 개발 신약으로서 최고의 기록이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가장 큰 성과였다고 할 수 있죠.

Q 이제까지 거쳐 온 업무 중 가장 애착이 갔던 업무는 무엇인가요?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님의 비서실장을 맡았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강 회장님은 제29대와 30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신 대단한 분이시죠. 곁에서 모시며 배울 점이 많았어요. 의학박사이시기도 한 회장님은 늘 배려를 강조하셨죠. ‘무관심은 죄악이다, 항상 남이 잘 되게끔 해야 나도 잘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리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하며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중요시 하셨죠. 회장님은 가방 하나 비서에게 맡기는 법 없이 늘 본인이 들고 다니셨어요.

'우리는 사회정의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하여 인류의 건강과 복지향상에 이바지한다' 동아제약의 사시에는 민장성 사장이 강조하는 기업가치가 담겨 있다.


그는 7년 간 강신호 회장을 보필하며 진정한 ‘배려’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평생을 제약업에 몸담았던 그가 식·음료 자회사인 동아오츠카 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아마도 오너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제약업에 비해 트렌디한 식·음료 기업의 사장으로서 그의 관심은 그 어느 때 보다 젊은 세대에게 향해 있다.

 

Q 제약에서 음료로 업무가 바뀌시고 나서 이전과 달라지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약업에서는 약을 마케팅 하는 데 있어 규제가 심해요. 아무래도 정부의 보험제도 내에 포함 된 제품이라 한계가 있었죠. 당시에는 일상 생활용품이나 식·음료업계의 자유로운 마케팅이 부럽기도 했고,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 식·음료기업으로서 동아오츠카는, 회사의 경비 업무를 담당한 직원부터 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 역시 트렌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죠. 하지만 트렌드도 주시하는 한편, ‘생활 속의 수분을 보충하는 건강음료 기업’이라는 동아오츠카의 기본 이념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는 사장으로서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매일 새롭게 하고 있죠(웃음).


사진제공_ 동아오츠카


Q 대표 브랜드인 포카리스웨트는 청순한 이미지의 스타마케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김소현 씨가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사장님께서 바라보시는 20대의 장점과 단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지금 20대는 모두 저보다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어떤 평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은 못 되죠. 그럼에도 굳이 이야기하자면, 요즘 회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을 볼 때 느끼는 아쉬움은 있어요. 이를테면 개인 중심적인 부분이죠. 그런 점이 개성이 될 수도 있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거든요. 인문학이 떠오르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지혜를 통해 지금을 재조명하는 것이 인문학이잖아요. 이처럼 젊은 세대들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어떨까 싶네요.

Q 20대는 인생의 다양한 길을 앞 두고 무수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요. 사장님께서는 그 시기에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선택을 받는 입장인 경우가 많죠. 제가 한 일은 회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선택하게 끔 준비한 것뿐이에요. 이는 다른 말로는 남이 나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해요. 내 선택만 옳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선택은 받아들일 수 없거든요. 큰 의미에서 회사의 인사발령이나 업무지시도 내 선택이 우선시 될 때는 부당하게 느껴지게 돼요. 반면 왜 나를 선택한 것인지 그 이유를 생각하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가 분명해지죠.

그는 취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성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미래세대라면 누구나 각자의 역할이 있고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도 했다. 또한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이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라고 조언한다.

"미래 가치가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면 좋지 않을까요? 
첫 발은 중요하지만, 시작부터 성공이라는 단어를 의식해
스스로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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